콘크리트 유토피아 과감한 정공법의 스토리텔링과 해외 반응

콘크리트 유토피아

정공법의 스토리텔링 재난 이후의 유토피아를 그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2023년 엄태화 감독의 신작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대해 잔기술 부리지 않는 정공법의 영화라는 맥락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계급 문제를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었습니다. 자가와 전세, 군필과 미필 등 여러 분열의 이슈들을 크고 작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황금 아파트와 드림펠리스의 구도 같은 것은 극화되어 묘사되긴 하지만 사실상 현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슈로 주민이 아니면 단지 내로 진입하는 것을 통제하는 등의 이야기는 기사를 종종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만약 영화와 같은 재난이 닥친다면 과연 우리는 다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어느 날 아침 대지진으로 인해 황금 아파트 103동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무너지는 재난이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재난 상황에서 황금 아파트만 생활 터전으로서의 기능이 유지됩니다.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 소문을 들은 외부 생존자들은 엄동설한의 날씨에 황궁 아파트로 모여들고 생존을 위해 서로 도우며 때론 싸우며 입주민과 외부인과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나날이 사건 사고에 칼부림까지 벌어지던 그때 영탁은 임시 주민 대표가 됩니다. 난리통에서도 의연한 태도와 남다른 결단력을 보여준 영탁은 황궁 아파트의 입주민 대표가 되고 아파트에서 외부인들을 내보내기로 결정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 재난 영화의 관습을 타파한 과감한 결정이 돋보이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을 중점적으로 묘사한 재난 영화가 아닌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인간 군상들이 벌이는 힘겨운 싸움이 주요 내용입니다. 재난 묘사는 주변을 비추는 폐허 장면이나 대지진 당시 인물이 처한 상황을 과거 회상 장면으로 보여주는데 예산의 한계 속에서 최대한 밀도를 유지하려는 지혜로운 판단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들을 배제하는 방법들을 사용합니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서사에 기여하는 것은 주요 캐릭터 여섯명 정도로 입주민 대표 영탁, 공무원인 젊은 남자 민성, 민성의 아내이지 간호사인 명화, 부녀회장 금애, 영탁의 비밀을 알게 되는 혜원, 타락해 가는 인간들 속에서도 자기 소신을 지키는 도균이 갈등 구조에 스며듭니다. 황궁 아파트 103동엔 갓난아기와 아기 엄마도 없으며 강아지나 고양이 전과자 같은 한국 영화들의 흔하고 뻔한 서브플롯도 과감하게 배제합니다. 이미 재난이 터진 이후의 디스토피아라서 희생이나 신파도 없습니다. 그간 꼭 나올 필요가 없던 것들을 꼭 나와야 할 것처럼 써먹던 한국 영화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결정은 영화를 군더더기 없고 견고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영화가 주는 긴장감은 약간 불편합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 내용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 사회를 축소해 놓은 사회 실험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트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주거 형태 속에서 외부인을 향한 이기심과 폭력이 끝없이 자행되는 가운데 실제로 재난이 벌어졌을 때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닐 것 같다는 생생함과 섬뜩함을 전달합니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음악의 조화와 해외 관객 반응

영화속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비밀을 지닌 영탁을 연기한 이병헌의 연기뿐만 아니라 부녀회장 금애를 연기한 김선영은 모든 대사처리에 있어 완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박서준이 연기한 민성과 박보영이 연기한 명화는 캐릭터의 특성상 아쉬움이 있습니다. 민성이 배신감을 느끼고 절망하거나 하는 감정적인 변화엔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영화 내내 우유부단하게 고민만 하는 캐릭터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명화는 더욱 답답한 캐릭터로 표현됩니다. 마땅히 지켜야 할 소신을 지키는 캐릭터이지만 디스토피아라는 배경 특성상 고집스럽게 착하기만 한 캐릭터는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각의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력은 인물의 감정을 세심하게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캐릭터들에 대한 해외 관객들의 반응 역시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인을 돕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명화를 지지하는 반응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다소 과격한 규칙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영탁의 모습을 지지하기도 한다는 반응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음악은 좋은 편입니다. 초반부는 봉준호 감독 영화처럼 우화적인 느낌을 주며 후반부는 적절한 공간감을 더해주는 식으로 배치했습니다. 종합적으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여타 한국 영화들이 보여준 결점들을 과감하게 제거한 깔끔한 이음새를 가진 상업 영화이자 어둡고 씁쓸한 현실을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어디까지 표출될 수 있으며 자신의 상황이었다면 어디까지의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