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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 오랜 명작 감각적 로맨스의 예측불허 엔딩
2024. 1. 23. 03:46목차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명작 기억의 모순과 감정의 끌림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개봉한 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명작으로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덤 앤 더머 마스크 등으로 코믹 연기의 대가로 불리던 짐캐리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사랑의 아픔을 절절하게 호소하는 조엘의 모습을 진지하게 표현해 냅니다. 고전 영화 전문 배우 느낌이 강했던 케이트 윈슬렛 또한 우아한 고전미를 탈피하고 온갖 색깔의 염색 머리를 무기로 클레멘타인의 자유분방함을 마음껏 표현합니다. 두 배우 모두 이전과는 상반되는 캐릭터를 만나 내면의 민낯을 진지하고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런 연기 변신은 SF 가 조화를 이룬 기발하고도 엉뚱한 로맨스 영화의 이야기를 쉽게 설득시켜 버립니다. 좋은 기억은 추억으로 오래도록 남기를 바라지만 나쁜 기억은 망각을 통해 지워졌으면 하는 것이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것이 원하는 것만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래서 철학자 니체는 망각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으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말은 이터널 선샤인에 나오는 말입니다. 영화는 기억을 시간의 역순으로 지우는 영리한 설정을 통해 이 사람을 싫어하게 된 이유가 사실은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된 이유와 같았다는 모순적인 진실을 더욱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니체의 말을 한 인물인 메리도 가정이 있는 하워드 박사와 사랑에 빠진 것을 되돌리기 위해 기억을 삭제하지만 다시 하워드 박사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망각은 때론 인간에게 축복일 수 있지만 실수조차 잊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기술의 힘을 빌어 주체적으로 기억을 삭제했지만 감정이 끌리는 대로 또 다시 반복되는 인물들의 서사를 보여주면서 인간은 뇌의 작용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뿐더러 감정과 본능의 영역을 무시한 과학기술은 결코 행복한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예상을 깨는 감각적 로맨스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의 예상을 깨버리는 이 영화는 한 번만 봐서는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기억을 지운 직후의 만남을 영화의 시작과 끝에 반복적으로 배치시켰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지우게 되는 과정과 연애 시절의 기억을 역순으로 배치한 구성입니다. 현재 시점과 함께 다소 뒤죽박죽 섞여 있기에 인물들의 감정과 사건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선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팁으로는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깔로 시간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깔은 조엘을 만나기 전까지 쓸쓸함을 상징한 색인 옅은 초록색에서 조엘과의 사랑이 가장 뜨거웠던 오렌지색과 점점 관계가 멀어지면서 식어간 마음을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표현됩니다. 자신의 열정 지수를 헤어 컬러로 표현하고 있던 클레멘타인과 달리 이런 변화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무덤덤한 조엘은 그녀와 격렬하게 싸우면서도 이별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나와 다르기에 더욱 강하게 서로에게 끌렸지만 결국 다르기에 서로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 생채기를 내는 모습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보편적인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다루지만 기억 삭제를 위해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판타지한 전개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덕분에 이별을 경험한 모든 이들의 깊은 공감과 더불어 흥미로운 상상력과 긴장감을 균형감 있게 끌고 갑니다.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이 영화를 제작했을 20여 년 전만 해도 뇌에 기억 회로를 만들어 원하는 기억만 삭제해버린다는 이야기는 온전한 판타지적 소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해 보면 멀지 않은 미래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해봅니다. 얼음이 깨질 것을 염려하는 조엘의 조심성과는 달리 깨지지 않으니 걱정 말라는 클레멘타인의 담대함은 두 사람의 끊임없는 갈등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얼어붙은 찰스강 위 두 사람 옆에 그어진 여러 갈래의 금은 아직 깨지지 않았고 앞으로 깨질지 알 수 없으나 보기에 위험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도 다시 시작하려는 두 사람은 반복될 것이 뻔한 갈등의 과정이 괴로울 것을 예상하고도 오케이라고 대답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웃음으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기억까지 삭제할 정도로 서로에게 질려버린 두 남녀의 재결합 장면을 해피엔딩으로 볼지 새드 엔딩으로 볼지는 각자의 판단입니다. 모두 삶의 궤적이 다르기에 다양한 감상과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입니다. 우리는 흔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정말 소중한 것은 잃은 후에 깨닫게 되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 역시 인간의 한계일 것입니다. 이별의 아픔에 그 사람과의 기억이 힘드시다면 이 영화를 보시고 공감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