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주인공 레오와 레미가 포옹하고 있는 모습의 영화 클로즈 포스터
    클로즈

    사랑과 우정 사이의 경계에 선 레오와 레미

    영화 클로즈는 관객들에게 사랑과 우정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두 소년의 감정이 사랑인지 우정인지가 아니라 경계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형제처럼 자라온 레오와 래미는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 친구입니다. 두 사람은 인적인 드문 시골마을의 화사한 꽃밭을 가로질러 굴 속 같은 공간에서 둘이서만 놀고 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고 특별할 것도 없는 곳이지만 레오와 레미는 같은 것을 상상하고 뭔지도 모를 둘만의 놀이에 빠져 정신없이 뛰어놉니다. 천진난만한 두 아이의 모습을 레오의 부모님과 형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둘은 서로의 부모님과도 가깝고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잡니다. 새로운 학기의 첫날 자전거를 타고 등교도 함께 합니다. 그러나 이날은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지는 비극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학교는 아이들로 가득합니다. 들리지 않는 상상의 소리를 공유하던 둘만의 꽃밭과는 대비되는 공간입니다. 레오와 레미는 학교 친구들에게 사귀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레오는 친구 레미가 좋습니다. 그 감정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거나 그것이 친구와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질문이 그 감정에 선을 그어 구분하고 다른 것 또는 잘못된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반면에 레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질문을 하고 놀리기 시작하자 레오는 조금씩 레미를 멀리 하게 됩니다. 붙어있기를 피하기도 하고 일부러 다른 친구들과 놀기도 합니다. 레오는 다른 친구들과 노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 위해 아이스하키를 하는 친구를 따라서 하키장에 다니기 시작합니다. 하키장은 학교와 다른 새로운 공간으로 레미 없이 레오 혼자 찾는 장소입니다. 레오는 이곳에서 갑옷 같은 검은색 옷을 입고 헬멧을 쓰고 빙판에 올라갑니다. 레미로부터 도망친 모습을 나타냅니다. 레오를 만나기 위해 레미가 찾아오지만 스케이트를 신지 않은 레미는 유리벽 밖에 있고 레오는 오지 말라고 말합니다. 영화 후반에 찾아온 레미의 엄마랑은 유리가 없는 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행동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이젠 보이지 않는 경계 이상의 투명한 벽이 생긴 것입니다. 레오와 레미 사이의 경계는 사랑과 우정의 경계가 그어지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영화 속 장면들의 색에 대한 해석

    영화가 색을 사용하는 모습은 흥미롭습니다. 레미는 빨간색과 자주 등장합니다. 붉은색 바지나 티셔츠를 입고 레미의 방도 빨간색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빨강은 강렬한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레미가 풍부한 감성을 표현하는 오보에 연주 장면에서는 가장 빨갛고 선명한 색의 옷을 입고있습니다. 그런 풍부한 감성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신을 향하기도 해서 섬세하고 여린 마음이 다치기 쉽습니다. 반면 레오는 늘 흰색 계열의 옷을 입습니다. 순수하고 물들기 쉬운 색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놀던 꽃밭에는 흰색과 붉은색 꽃이 가득했습니다. 서로 다른 색의 옷을 입었지만 색깔에 관계없이 같은 꽃 사이를 달립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놀림받은 뒤 집으로 가는 길에 레미는 빨간 꽃길을 레오는 하얀 꽃길을 걷습니다.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생긴 것입니다. 레오가 레미로부터 도망친 공간인 아이스하키장은 처음에 꽃밭과 아주 대조적으로 차갑고 무채색이면서 거친 공간입니다. 레오가 레미가 함께했던 화려한 색의 꽃밭과 달리 무채색의 아이스하키장은 레미에 대한 레오의 닫힌 마음을 잘 표현해 줍니다. 새하얀 레오의 마음에 레미와의 사이에 대한 다른 친구들의 질문이 선명한 선을 그었고 레오는 이것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꽃을 수확하는 장면에서 레오는 시커먼 옷을 입고 연약하게 남은 빨간 꽃의 흔적을 흙속에 묻어버립니다. 그리고 학교 소풍날 레미는 세상을 떠납니다. 레미가 떠난 뒤 레오는 하얀 옷을 잘 입지 않습니다. 탁한 카키색 티셔츠나 어두운 네이비색 그리고 연한 자주색을 입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클로즈는 아역들의 감정을 대사를 많이 쓰는 대신 색으로 표현합니다. 레오의 엉망진창이 된 마음을 흰색 위를 덮는 다양한 색으로 표현합니다.

    모호한 것들의 경계에 대한 고찰

    레미가 세상을 떠난 후 레오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레오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겉보기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이어갑니다. 죄책감으로 인해 자신의 슬픔마져 외면하고 자신을 벌주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레오의 감정은 하키를 하다 팔이 다쳤을 때 비로소 폭발합니다. 팔이 부러진 상황은 물리적으로 고통이 있는 상황이기에 마치 허락을 받은 것처럼 마음 놓고 우는 모습을 보입니다. 레미의 엄마는 아들이 죽은 이유를 모릅니다. 레오가 알 거라고 생각해서 몇 번 물어보지만 상처받았을 어린아이에게 깊게 추궁하지는 못합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레오는 결국 레미의 엄마에게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죄책감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울창한 숲 속에서 겁먹은 레오를 레미의 엄마가 꼭 안아주며 영화의 고통과 갈등은 끝이 납니다. 클로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호한 것들을 나열하고 관객들이 선을 긋게 만들고 있습니다. 두 소년의 관계가 무엇인지, 비극이 누구의 잘못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그리고 과연 이 영화를 퀴어라는 장르에 넣어야 하는지까지 말입니다. 레미의 가족은 말없이 이사를 가버렸고 하키를 하다 다친 레오의 팔도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레오는 다시 꽃밭을 찾습니다. 새로 보이는 꽃밭에는 하얀 꽃은 보이 않습니다. 다치고 아프면 성장하는 것이 규칙이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어떤 것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레오의 농장의 꽃은 흰색에서 빨간색까지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는 핑크색이기도 하고 자주 색인 꽃들도 보입니다. 색은 경계 없이 천천히 변화합니다. 정작 그걸 구분하는 건 꽃을 꺾는 사람입니다. 영화 클로즈는 감정의 영화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느낌,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고 분명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들은 타인의 말과 시선에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비극은 외부의 시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시선이 다른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반응형